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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12-27 09: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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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 소외된 다수를 위한 따뜻한 첨단기술이 되다



▲ 3년간의 노력 끝에 정수 테스트로 성공적으로 마치고 세라믹기술원 연구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2월의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비가 적은 건기에다 이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캄보디아 여행에 가장 좋은 계절로 친다.

이번 출장은 3년 동안 여섯 번의 캄보디아 출장 중에 가장 쾌적한 기후 조건이었고, 그동안 기울인 노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출장길이었다. 그 덕에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은 기념품이라도 살까 하고 공항 면세점을 기웃거리는 여유도 부렸다.

한국세라믹기술원 도자세라믹센터에서 일하는 내가 팔자에 없는 캄보디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4년 전 당시 지식경제부(現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관한 아이디어 콘테스트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기술원내 정책 과제로 ‘숨 쉬는 옹기’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옹기가 왜 숨을 쉬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이해한 상태였다. 우리의 논리는 숨을 쉴 수 있다면 즉, 공기가 통한다면 옹기가 물을 거를 수 있는 필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의미의 확장이었다.

여기서 비롯된 깨끗한 물을 만드는 ‘전통기술을 이용한 옹기 필터’라는 아이디어는 아쉽게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3년의 연구개발 기간으로 기술원 자체 계획을 수립했다.

30년이 넘게 첨단 세라믹 연구와 생산에 전념해 왔지만 정작 일반인에게 내가 해온 일을 설명하려면 뭔가 말이 길어지곤 한다.

무기재료공학이 첨단 제품을 만들고 효율을 높이는 결정적인 기술임에도 그 직접적인 수혜자는 항상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냉장고나 텔레비전이 그림의 떡에 불과하듯이 편리함이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 연구 개발에 애착을 가진 이유는 우리의 기술을 소외된 다수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그 기대 때문이었다.

개발에 앞서 우리는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와의 협의를 통해 캄보디아를 첫 기술 보급지로 선정하였다.

캄보디아의 물 문제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마실 물도 부족하지만 수인성 전염병으로 영아사망률은 세계 1위였다. 이를 개선해보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이어져 그동안 여러 나라의 NGO들이 값비싼 장비를 들여와 우물을 설치해 주기도 했지만 사후 관리가 안 되어 속수무책으로 방치되다 애물덩어리로 전락하곤 했다는 것이 우리가 파악한 현실이었다.

▲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오염된 물을 나르는 모습.

첫 방문은 2014년 초여름이었다. 캄보디아의 시엠립 공항은 앙코르 와트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는 컨베이어를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골프백들 사이에서 간신히 우리의 짐을 찾을 수 있었다. 공항 밖의 풍경은 한국의 여느 도시와도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관광도시였다. ‘도대체 이런 곳에 물 부족이라니?’ 이것이 우리의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도심을 살짝 벗어나자 이곳의 삶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허름한 집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물동이들은 다시금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일깨워줬다.

작업장 후보지는 자동차로 2시간을 더 달리고 나서야 나타났다. 드넓은 초원에 군데군데 모여 있는 집들, 어린 학생들이 물 길러 가는 모습들, 숯을 만들기 위해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들. 그러나 이 평화롭고 낭만적인 전원 마을에 살기 위해서는 척박한 삶의 조건들을 견뎌내야 했다.

당연히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을에 파 놓은 널따란 웅덩이에 고인 물이 그들의 식수였으니 아이들의 배앓이는 일상화되어 있었다. 빗물이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물이었다.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티 없이 해맑은 눈동자로 우리를 맞았다.





숨 쉬는 전통 옹기서 시작된 아이디어…정수 필터로

옹기·가마 제작 통한 캄보디아 현지 생산라인 자립화






이 지역의 흙을 조사한 결과 다행히 옹기 특성의 필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성분과 점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이 흙으로 용기를 만드는 기술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성형이라는 공정은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몇 가지 과제가 도출되었다. 우선 이들에게 필요한 원료를 구별하고 이를 쓸 만한 재료로 가공하는 노하우를 가르쳐야 했다. 또 누구나 쉽게 성형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용기를 구울 가마를 쌓는 일이었다. 인근에 폐목이 많다는 이점을 살려 장작가마를 쌓기로 했다. 제조 원가를 계산해보니 필터 하나당 1달러 이하로 예상을 넘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 장작가마를 축조하는 모습.

첫 출장에서 돌아온 우리는 현지 사정에 맞는 공정을 설계하고, 중고 설비들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성형기는 3D 프린터를 사용하여 직접 제작하였다. 세상에 하나뿐인 손 성형기를 만든 것이다. 준비된 물건들을 배편으로 보낸 우리는 그 짐들이 현지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기다려 캄보디아로 향했다. 작업은 도착 다음날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일정도 줄이고 조금이라도 시원한 시간에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물건들을 하나하나 옮기며 점검하는데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길 가던 초등학생들까지 일손을 돕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마를 만들기 위해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었다.

뜨거운 열대 기후와 맞서 그렇게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연구원 하나가 탈진해 쓰러졌다. 더위에 지쳐 열사병이 온 것이다. 그렇다고 작업을 중단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머리가 몽롱해져도 서로를 독려해가며 교대로 작업을 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연구원이 하나둘 늘기 시작할 즈음 마침내 일주일간의 가마쌓기 작업이 끝났다.

▲ 현지에서 이루어진 교육의 현장.

긴장을 풀 시간도 없이 첫 불 지피기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혹시 모를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주민들도 조바심 속에 한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행히 가마는 아무런 문제없이 1100℃를 훌쩍 넘김으로써 성공적인 축조를 알렸다.

기진맥진한 우리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마주변에 모여 정수기 공장의 탄생을 알리는 조촐한 축하 파티를 벌였다. 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당번을 정해 밤마다 이곳에서 취침하며 작업장을 지켰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다섯 번의 출장에 모두 70여 일 동안 현지에 머물며 필터의 성능을 점검하고, 생산라인을 최적화하는 한편 현지인들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모든 과정에 대한 교육 훈련에 힘썼다. 무엇보다 안전에 역점을 두었다. 이곳은 의료시설이 없어 어지간한 부상은 비상약 정도로 때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작업장 안쪽까지 들이닥치는 거센 폭우가 몰아쳤고, 물에 젖은 땔감용 나무는 제대로 온도를 올리지 못하고 애를 먹였다. 소나무와 달리 열대 지방의 활엽수 나무는 화력이 약해 나무를 가능한 잘게 잘라 소성하는 묘수를 부리기도 했다.

이런 악조건들을 현지인들과 함께 극복하며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돈을 벌기 위해 낯선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의 애환과 교육의 중요성, 그들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우리대로 어제의 우리를 되돌아보았다.

▲ 오염된 원수와 다양한 필터로 정수 테스트를 해보았다. 필터 아래의 정수된 물들의 깨끗함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가장 감격스런 순간은 정수 시험이었다. 오렌지 주스 같은 노란 물이 필터를 통과해 맑은 물이 되어 나왔을 때 우리는 너나없이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이제는 이메일로 레시피를 보내면 시험 결과를 이메일로 보내올 만큼 거의 자립화되어 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2년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용 필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을 단위, 학교 단위의 공동 정수 시스템의 개발과 보급이 우리의 목표다. 특히 한국세라믹기술원 원장님의 현지 방문 이후로 우리의 꿈은 더 부풀고 있다.

그 꿈은 물 문제 해결을 위한 필터 생산을 넘어서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높이는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마을로 변모하는 것이다. 오래 전, 우리가 그랬듯이 말이다.

▲ 캄보디아 현지에 조성된 정수시스템. 가마와 다양한 종류의 필터(옹기)로 현지에서 생산 자립화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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