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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4-28 22: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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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웅장함, 그것을 극복한 인간의 위대함



여행은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여행에는 설레임과 함께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계획되지 않은 여행에는 그렇다.

이번 태항산 여행도 나에게는 그렇다. 중국. 그것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태항산. 우리나라의 산과는 다른, 거칠고 자연의 태곳적 신비를 갖고 있는 산. 이 산이 나에게 줄 의미는 어떤 것일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번 여행은 첫날부터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오후 3시 10분에 출발하기로 했던 비행기는 기체 정비로 인해 50분이나 늦어졌고, 그렇게 출발한 비행기도 석가장 공항에 도착해서는 악천후로 인해 착륙할 수 없으니 인천공항으로 회항할 수 있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 여기저기에서는 승객들의 불만족스러운 한마디와 함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기내를 감싸고 있었다. 얼마 후 착륙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 비행기에 탄 승객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내린 석가장 공항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4월19일. 서울에서는 벚꽃이 만발해 여의도에서 벚꽃 축제가 한창 벌어지고 있던 날 석가장은 차가운 공기와 함께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친 첫날은 한단에 있는 진도호텔에 여정을 풀며 하루를 마감했다.

둘째날 태항산 대협곡으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태항산은 남북길이 약600㎞, 동서길이 250㎞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이며 중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린다. 중국 하북성, 하남성, 산서성 등 3개성에 걸쳐 위치해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산서성은 이 태항산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이름이 지어질 정도로 태항산은 거대한 산이다. 한자로는 太行山이라고 쓴다. 行은 보통 ‘갈’ ‘행’으로 읽지만, 이 산을 지칭할 때는 ‘다니다’라는 뜻의 ‘항’으로 읽는다.

태항산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려면 우리나라를 전국 유람하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 걸린다. 이에 3박4일이라는 한정된 일정에 맞게 몇 군데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임주대협곡 코스다. 우리는 우선 도화곡을 따라 협곡을 올랐다. 도화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잔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바위틈의 아주 작은 길을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길이다. 그 잔도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 우리는 드디어 태항산의 내부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장소는 다르겠지만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피해 촉으로 들어가며 불태웠던 잔도들이 이러한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감상에 잠시나마 젖어들었다. 도화곡을 지나 구련폭포에 도달하면 복숭아나무가 군데군데 심어져 있고 계단식의 폭포사이로 흐르는 폭포수가 마치 무협지의 무림인들이 무예수련을 쌓고 있을법한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낸다.

▲ (두번째줄 네번째)유연채 서울경인조합 이사장 및 조합원들이 천계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임주대협곡에 오르기 위해서는 전용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가이드가 버스기사와 흥정을 통해 버스를 대절하고 모두들 버스에 올랐다. 버스 여기저기에서는 장가계와 비교했을 때 별로라며 이런데 왜 오자고 했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볼멘소리도 단 몇 분 지나지 않아 감탄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깎아지를 듯 한 절벽과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협곡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이 협곡들을 보고 문득 내가 산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불러 이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아닌 이 산은 영혼이요, 자연의 거대한 울림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감상에 젖고 있는 동안에도 절벽같은 길을 따라 버스는 연신 ‘빵빵’대며 태항천로를 따라 협곡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것을 ‘빵빵대’라고 말했다. 이 협곡을 오르는 길은 워낙좁고 커브길이 많아 이곳을 오가는 차들은 ‘빵빵’ 경적을 울려 서로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했다. 일종의 신호이며 안전장치인 것이다.

그렇게 차로 몇 십 분에 걸쳐 올라가면 왕상암에 도달할 수 있다. 왕상암에서 본 임주 대협곡은 마치 속살을 다 보여주기 싫은 듯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그 웅장한 신비를 내뿜고 있었고, 안개가 걷히면 마치 다른 거대한 절벽이 앞을 가로막을 듯한 거대한 힘으로 나의 영혼을 압도하고 있었다.

▲ 도화곡의 잔도를 따라 등반객들이 산에 오르고 있다..

산의 그러한 기운보다도 더욱 놀란 것은 이런 험한 산 정상에도 밭과 논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들은 대대로 이곳에 살며 돌과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고, 거친 돌산을 다듬어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삶고 있었다. 새삼 거대한 자연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주어진 삶을 다하는 인간의 위대한 생명력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이들의 묵묵한 삶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임주대협곡의 모습(환선도로 사이로 원주민이 개간한 계단식 논이 보인다).


자연극복 인간의지 ‘괘벽공로’, 고개 숙여져

서울경인조합원들 ‘호연지기’ 속 화합 다져


3일차 우리는 하늘과 땅의 경계라고 불리는 천계산에 오르게 된다.

천계산에 오르기전 우리는 구련산에 올랐다. 구련산에 오르려면 주차장에서 8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계곡을 올라야 한다. 대형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길이 좁은 탓도 있겠지만 이 곳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마련해 놓은 일종의 통행세 같은 것이라 생각됐다.

구련산. 9개의 연꽃이 피어오르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협곡 깊숙이 들어온 듯한 감싸 안은 지형에 그 웅장함을 자랑하려는 듯한 120m의 천호폭포의 모습. 그리고 그런 대자연을 자신의 놀이터로 삼아 절벽을 부딪칠 듯이 날고 있는 매의 모습에서 다시금 감탄사와 함께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천호폭포 옆에 마련돼 있는 130m의 유리로 외장을 한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복잡한 세상일은 모르는 듯 자신들의 세계를 살고 있는 서련촌 마을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고, 그들의 소박한 기도를 들어줄 서련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서련사에서는 무언가 자신들의 소원을 이뤄달라고 연신 향을 피워 기도를 드리는 중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편 서련촌에는 ‘철이네가게’라고 하는 한국어로된 조그만 가게가 있다. 한국관광객이 많이 오다보니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가게 이름 아래 ‘오빤구련산스타일’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났다. 이 산간벽지에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더욱 놀란 것은 스마트폰 기지국 시설이 2개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선지 아니면 관광객을 위해선지 모르겠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망치는 흉물스러운 기지국 2개는 산 정상에서도 스마트폰을 끊김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줬다.

▲ 구련산의 모습.

드디어 태항산의 하이라이트인 천계산에 오른다. 하늘과 산의 경계라는 천계산. 그 천계산을 오르기전에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 있다. 바로 ‘괘벽공로’다. 이 산의 곽량촌에 사는 청년들이 계단에 오르내리며 생활해야 하는 것을 개선하고자 1972년에 6년의 사투 끝에 폭 6m, 길이 1300m 찻길을 만들었고, 이후 주민들과 군인들이 망치와 정으로 길을 내 91년도에 현재의 모습으로 길을 준공했다고 한다. 천 길 낭떠러지에 길을 냈다는 사실보다 자연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천계산 풍경구에 오르면 다시 케이블카를 이용해 해발 1570m의 천계산 최고봉인 노아정으로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해 노아정으로 가는 길은 약 10분정도 걸리는데, 주변이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구름 위를 오르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하늘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 한 그런 느낌에 빠졌다. 아마 신선이 있다면 그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천계산 정상에 있는 노아정도 역시 일종의 사찰이다. 불교와 도교가 합쳐져 있는 야릇한 느낌이 전해왔다. 노아정에 오르려면 역시 아슬아슬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일행 중 대부분은 포기했지만 몇몇 일행은 노아정에 올라 정상에 올랐다는 자부심과 함께 가장 높은 곳에서 태항산의 협곡을 바라봤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천계산이라는 이름답게 하늘과 땅 사이의 충만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 박종오 서울경인조합 전무, 노아정 표지석에는 ‘최고봉 : 해발1570m’라고 표시돼 있다..

천계산에서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왕망령 풍경구다. 역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한다. 왕망령 풍경구는 태항산 대협곡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산 정상답지 않게 평평하고 고른 느낌이었는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과거 왕들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주차장 한쪽에는 바둑을 두는 신선의 모습과 바둑판 모습의 조형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조형물 옆에는 우리나라의 조훈연 기사가 여기에서 바둑을 뒀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이 걸려있었다. 아마도 중국인들에게는 이 장소가 신선들이 바둑을 두기에 알맞은 장소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왕망령을 끝으로 우리가 선택했던 태항산의 일정은 끝이 났다. 물론 태항산의 다른 멋진 곳들도 있지만 그 아름다운 곳들은 후일 다시 찾을 기약으로 남기며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 왕망령에서 찍은 단체사진(뒷줄 오른쪽 세번째가 필자).

태항산. 한국인인 나에게 이 산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단순히 산의 아름다움, 웅장함 그런 객관적인 모습으로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중국인이었다면 태항산과 가까이 있는 숭산을 떠올리며 제왕의 기상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천하를 차지하려면 중원을 차지해야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중원 한 가운데에 바로 이 태항산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한단이라는 마을도 진시황제의 고향이다. 천하통일, 중원... 먼 옛날이야기들이 이 산을 통해 나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이 산의 기운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산의 거친 땅을 개간해 살고 있는 소박한 원주민들. 아마도 그들은 중원 쟁탈전을 피해 이 산으로 올라온 피난민들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중원을 쟁탈하기 위한 강한 기운을 내뿜는 산과 그러한 전쟁을 피해 이 산으로 올라온 정치와는 무관한 피난민들의 후손들. 반대의 뜻을 가진 두 존재가 공존하는 이 산은 아니 이 산맥은 아마도 내 평생에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이 산맥에서 원주민들이 보여준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온 인간의 강한 생명력은 이번 여행에서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한편 이번 여행은 서울경인고압가스조합의 해외 세미나에 기자단을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서울경인조합의 조합원들은 이번 여행에서 호연지기를 다지며, 조합원 간의 신뢰와 화합을 다지는 시간을 나눴다. 여행에 초대해준 서울경인조합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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