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산업을 당대 최첨단 기술로, 인식 바꿔야 제조업 산다”
■우리 제조업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우리나라가 제조업의 후발 주자였지만 수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 자원,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노동력, 기술력,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로 가공무역 부문에 자본을 집중해 노동 경쟁력을 바탕으로 낮은 가격에 수출하고 영업이익 보다 매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현재의 대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가절감이 핵심경쟁력인 중소기업들이 고통을 감내하면서 기술력 축적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세계 수출 5위 국가로 도약했지만 가공무역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수입량도 많고 내수시장은 작기 때문에 외환에 취약하다. 이제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한국 제품은 일본 및 신흥국 제품에까지 밀리고 있다. 제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더 이상의 원가절감을 감내할 수 없다.
이제 제조업이 지속발전 하려면 정부와 대기업이 몸집 불리기를 벗어나 생산성 향상과 체질개선에 투자를 집중해야 하고 기술선도 중소기업의 가치와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기술혁신을 위해 뿌리기술의 첨단화와 함께 ICT, 3D프린팅기술 등 최신기술을 적극 도입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일반 국민들의 인식이 이제는 ‘잘 살아보세’에서 ‘제대로 살아가세’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가 목표 달성을 위한 나 중심의 획득형 가치관이라면 후자는 구성원 모두 자기 역할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에 올바르게 기여하면서 지속발전을 함께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뿌리산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심하다
회의와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뿌리산업을 알리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뿌리기술은 옛날기술’이고 ‘첨단기술은 신기술’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뿌리산업하면 허름하고 낡은 낙후된 작업장을 떠올리고 영세한 중소기업들을 떠올린다.
뿌리기술은 당대의 유용한 지식과 기술이 어우러져 구현 가능한 제조 기본기술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 5천년 전에 이집트에서 금속을 녹이고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기술이 당시 첨단 기술이었다면, 현재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무기 제조 기술도 현재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 시대만 다를 뿐이지 뿌리기술은 역사적으로는 항상 그 시대의 첨단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제품 모두가 뿌리기술을 통해 제조되고 있다. 자동차 1대 생산시 뿌리산업 관련 비중이 90% (부품기준 2만2,500개)에 달하고 선박 1대당 용접 비용은 전체 건조비용의 35%를 차지한다. 뿌리기업의 기준이 ‘뿌리기술을 활용해 매출액의 50% 이상을 올리는 기업’인데 대기업이 생산하는 거의 모든 제품들도 뿌리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현재 수준의 뿌리산업 특성상 열 또는 압력으로 가공하는 공정으로 인해 작업 환경이 좋지 못하고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민원도 다반사다. 해결책은 이러한 뿌리산업의 현재 속성을 사회생리학적 요구 수준에 맞추어 진화시키고 지속 발전시켜 친환경 저에너지 산업으로 전환해서 전 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 뿌리산업을 없애는 데 있지는 않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는 뿌리기업 전용 특화단지 지정, 스마트공장 보급 사업, 자동화·첨단화 지원 등을 통해 뿌리산업의 진흥 및 육성에 나서는 중이다.
韓 제조업 위기, 가격경쟁력 하락에 기술력 향상 없이 몸집만 키운데 있어
고객 요구 대응속도가 제조업 경쟁력, ICT·3D프린팅 접목 및 인재공급 시급
■뿌리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공급’이 시급하다
뿌리기술은 암묵지(Tacit Knowledge)로 경험과 숙련을 통해 체화되어 존재하는 공정기술로 한 국가의 기술 프리미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 일본 등이 지속적으로 제조 선진국의 지위를 누리는 이유는 이러한 암묵지가 세대 간에 잘 전달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 경쟁력으로 제조업 강국이 된 일본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젊은층에게 뿌리기술 전수를 위해 ‘모노즈쿠리’ 정책 (기술 정책)과 동시에 ‘히또즈쿠리’ 정책 (인력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주말 및 야간 대학원 교육시스템이 잘 구비돼 있어 선배 전문가가 도제식으로 기술을 이전해 준다. 또한 인터넷상에 기술이전 플랫폼을 구축해 필요한 기술과 전문가를 연결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일본은 뿌리산업에 대한 대국민 홍보활동이 적극적이고 참신하다. 뿌리기업들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을 초청해 금형으로 초콜릿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장내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며, 공장 주변의 녹지에서 생산되는 농산품을 이웃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한다. 또한 주조 과정에서 나오는 폐 주물사를 활용해 제올라이트 탈취제를 만들어 전통 공예품과 결합시켜 관광상품화 하기도 한다. 뿌리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심어 국민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이 뿌리산업에 종사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고 그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가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뿌리산업 인력 중 40대 이상이 58%를 차지하고 있고 20대는 9.1%에 불과하다.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2012년 6.6%에서 2013년 6.9%로 늘었다.
이같은 고령화와 외국인력 대체 현상은 열악한 작업환경, 낮은 임금, 사회적 편견 등에 기인한다. 이에 우리정부는 많은 예산을 투입, 마이스터고 확대,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있지만 이들 인력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추가 진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정책은 이제 인력양성만이 아닌 중소기업에 정착하기 위한 ‘인력공급’ 정책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할 시점이다.
일례로 독일의 경우 레알슐레 또는 하우프트슐레 중고교과정 졸업 후 대다수가 대학이 아닌 산업체로 입사하는데 5년 정도 경과 후 자격시험을 통해 정부, 지자체, 기업이 마련한 자금으로 연봉을 점차 올려주면서 대졸자의 임금과 비슷하게 맞춰준다.
또한 제조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세를 보조해주는 등 복지에 신경을 많이 써서 월급이 적어도 실제 생활에 불편이 없게 한다. 우리도 이처럼 중소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지속 확보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뿌리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
기존 기술을 바탕으로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온 우리 뿌리산업이 기술한계에 부딪혀 있다. 이러한 문제를 먼저 겪고 있는 일본, 독일 등 제조 선진국들도 기술 혁신과 현실적 교육 시스템 도입 등을 도입해 제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뿌리산업계가 재도약하려면 신기술을 두려워 말고 동시에 납품처가 아닌 고객의 마음을 읽고 시장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주인정신을 가져야 한다.
뿌리산업 재도약은 국가가 일자리 창출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 성장을 하기 위한 핵심이다. 미국이나 영국이 제조업 대신 금융 등에 투자를 집중한 결과 고용 없는 성장이 이루어지고 각종 금융위기가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을 보라. 한 번 붕괴된 제조업 기반을 다시 살리기 위해 미국 대통령부터 나서고 있지만 앞서 얘기한 암묵지와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계속 키워나가는 독일이 현재 유럽의 경제적 맹주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과 일본이 경제 재건을 위해 얼마나 제조업 부활에 노력하는 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소비처로 부상하고자 하는 중국이 얼마나 가열 차게 제조업 분야에서 뛰어 오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두렵지 아니한가?
뿌리산업 정책 기획, 기반 구축, R&D 및 기술지원, 인력양성, 홍보 등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는 뿌리산업 재도약을 위해 기존 사업을 크게 묶어 △인재키우미 사업 (뿌리특성화대학원, 외국인 기술인력 활용 등) △산업지키미 사업 (통계 작성, 특화단지 지정 등) △경제도우미 사업 (수익성개선, 스마트공장보급, 에너지효율향상, 애로기술지원 등)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우리 제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뿌리산업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어려운 점이나 궁금한 점이 있을 때 항상 센터를 찾아주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