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경기일대에서 신냉매(R-134a)로 둔갑 유통되고 있는 자동차 에어컨 냉매가스가 정품이 아닌 HCFC-142b, HCFC-22 혼합냉매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냉매업계에 따르면 수거된 불법 R-134a를 지난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분석 의뢰한 결과, 성분이 R-134a 정품이 아닌 HCFC-22(CHClF2) 25.26%, HCFC-142b(C2H3ClF2) 74.74%로 구성된 혼합냉매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에 대해 냉매업체 한 관계자는 “표준과학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한 냉매용기는 외관상으로 R-134a로 표시됐으나 내용물은 전혀 다른 불법 냉매로 소비자들을 완벽히 기만한 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각 HCFC-22는 대표적인 가정용·산업용 에어컨 냉매이고 HCFC-142b는 Foam 발포제 및 냉매로 차량용으로 쓰이지 않는 냉매로서 차량 운전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위험을 안고 달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1990년대 초반부터 차량 컴프레서는 정품 R-134a를 기준으로 제작돼 다른 냉매를 사용할 경우 압력이 높아 컴프레서가 망가질 위험이 크고 폭발의 위험성도 있어 안전성과 내구성에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제로 최근 유럽 일부지역에서 빈번했던 R-134a 컴프레서 고장의 주원인이 불법, 불량 R-134a 냉매 때문인 것으로 나타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독일 드레스덴의 ILK리서치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불법으로 제조된 냉매의 주성분은 클로로메탄(R-40)과 R-22의 혼합물질로 밝혀졌다. 이번에 검출된 HCFC-22가 그중 하나며 이 혼합물의 열역학 성질은 R-134a와 비슷하지만 냉동기에 사용되면 시스템 내부의 오일과 반응하면서 컴프레서 고장을 일으키고 유독성분인 클로로메탄 공기와 반응해 가연성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R-134a와 달리 HCFC-22와 HCFC-142b는 오존층 파괴를 일으키는 HCFCs 물질로서 수입시 지식경제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HCFCs는 몬트리올 의정서 2차 규제물질로 지정돼 2013년부터 사용량 감축이 시작되고 2030년부터 생산 및 수입이 완전 금지된다. 이미 미국 환경청에서는 2010년 1월1일 이후 제조된 HCFC-22 및 HCFC-142b 냉매를 사용하는 냉동공조기 및 에어컨 유통·판매를 금지했고 유럽에서는 R-22를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 지식경제부도 HCFCs의 2009년과 2010년 국내 소비량 평균을 기준으로 2013년에 소비량을 동결하는 등 단계별 감축계획을 수립하고 HCFCs 생산, 수입 및 판매 허가제도를 강화할 예정이다.
불법 냉매는 허술한 제도의 틈을 노렸다는 것. 현재 HCFC-22와 HCFC-142b를 수입할 때는 지경부의 허가를 거쳐 한국정밀화학산업진흥회에서 수입쿼터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냉매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이번 불법 R-134냉매는 정품으로 위장해 세관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나 관세법 위반은 물론 지경부의 허가 없이 들여온 것이 됐다.
정밀화학산업진흥회의 관계자는 “허가 없이 HCFCs 물질을 수입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으로 수입자는 3,0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4월초부터 자동차 정비소에 14톤이 유통된 것으로 조사된 불법 R-134a는 5월 현재 약 50톤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냉매업계는 전했다. 이는 소나타3 기준으로 7만대에 이르는 분량이다.
저가로 유통된 불법 냉매로 피해를 입은 후성, 화인텍, 한강화학, 삼광가스테크 등 4개 냉매 업체들은 혼합냉매로 밝혀진 불법 R-134a의 유통을 우선 차단하기 위해 공동구매를 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부분정비사업조합연합회(카포스)에 협조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또한 불법을 일삼으며 수입·유통한 업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근절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