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밀려 부진을 겪어온 일본 반도체 산업이 뛰어난 제조·소재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시장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과 일본의 스가 총리는 지난 4월16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의 협력을 다방면에서 강화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성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협력을 한다는 부분이 있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라 현재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깊어지는 와중에 양국의 반도체 공급망이 안고 있는 위험을 씻어내기 위한 실무 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반도체산업 중 제조 장치 및 소재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미국은 일본과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해 공동연구 거점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할 계획이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반도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제조 장치 및 소재 분야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포진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1988년 세계 반도체산업 매출의 50%를 차지했으나 2019년 기준으로 점유율이 10%로 내려 앉았다. 1992년 반도체 기업 매출 10위권에 5개의 기업이 일본 기업이었던 것에 비해 2019년에는 1개 기업만이 남아있다. 반도체 생산 측면에서는 세계 1위의 반도체 공장수를 보유하고 있으나 다수가 노후화 및 진부화로 인해 기존의 전통적인 공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반도체 분야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본이지만 반도체 장비와 첨단장치 및 소재 분야에서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도쿄 일레트론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 네덜란드 ASML에 이은 세계 3위의 전공정 장비 업체이다. 도쿄 일렉트론은 레지스트를 도포해 전자회로를 형성하는 코터(Coater), 디벨로퍼(Developer) 분야에서 90%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후공정과 관련해서 디스코는 회선을 붙인 웨이퍼를 절단해 칩으로 가공하는 다이싱(절단) 과정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완성된 반도체 칩의 성능을 검사하는 테스터 분야에서에서는 Advantest가 세계 점유율을 양분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는 기판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및 포토 레지스트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많다. 실리콘 웨이퍼 분야에서는 신에츠 화학 공업과 SUMCO가 전 세계 점유율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고속통신규격 5G나 데이터 센터 등 첨단제품에 사용되는 제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웨이퍼 회로를 형성할 때 사용하는 포토 레지스트 소재의 경우 일본 업체가 90%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JSR이나 도쿄 오카공업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지난 3월부터 일본 경제산업성은 향후 디지털화 및 전략자원으로의 의미를 가지는 반도체 확보를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해당 논의에서는 기본적인 일본의 반도체산업의 발전 방향이 논의됐다. 주요 내용으로 △ 국내 생산기반 강화 △ 반도체 수요 산업과의 연계 강화 △ 반도체 기술의 그린 이노베이션 및 파워 반도체 육성 △ 국내 반도체 산업의 포트폴리오 및 체질 강화 △ 서플라이체인 관리 및 관련 국가와의 협력 강화 등의 방향이 제시됐다.

코트라(KOTRA)는 “기존 반도체 발전을 이끈 것은 무어의 법칙이라 불린 미세가공 기술이었지만 미세화 속도가 둔화되면서 미세화 이외의 패키징 등 후공정에서의 신기술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며 “일본은 지난 25년간 반도체산업에서 지속적인 패배를 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잠재력을 살려 다시 한번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 부활을 꾀하고 있어 우리 반도체산업 소부장 기업들은 새롭게 재편되는 공급망 속에 안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