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 상향을 추진하며 산업계의 원가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완화·면제 등 전기요금 부담완화를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신동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 의뢰한 ‘배출권거래제의 전기요금 인상효과’ 보고서를 21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발전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상향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26년부터 적용될 유상할당 비율은 올해 상반기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을 통해 제시된다.
보고서는 발전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현행 10%에서 25~50%로 인상할 경우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 에너지 집약 업종별로 적게는 1천억원에서 많게는 5천억원에 달하는 원가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예시로, 발전부문에 대한 50% 유상할당과 배출권가격 30,000원을 가정할 때 제조업 전기요금이 연간 약 5조원 상승하며, 업종별 추정결과는 △전자·통신 5,492억원 △화학 4,160억원 △1차금속 3,094억원 △자동차 1,786억원이다.
보고서는 올해 상반기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 발표를 앞두고,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발전부문 유상할당 비율의 대폭 상향이 아닌 점진적 상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배출권거래제 의무 참여에 따라 부족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발전부문의 유상할당 비율 확대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상으로 할당된 배출권에 대한 경매수익은 기후대응기금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다만, 기후대응기금이 소규모, 단기성 사업에 활용돼 온실가스 배출저감 효과가 낮다는 문제제기가 지속되고 있다. 유상할당 비율을 상향하기에 앞서 선결돼야 하는 과제를 해소하지 않을 경우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23년 독일은 높은 에너지 요금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국 제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28년까지 최대 280억 유로에 달하는 전력 요금 패키지 도입에 합의했다. 패키지 지원의 주요 내용은 모든 제조 기업에 대한 전기요금을 kWh당 1.537센트에서 0.05센트로 인하하고,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을 일부 보상해주는 등 다양한 정책을 포함한다. 일본도 지난 ’23년부터 kWh당 0.9~3.5엔에 달하는 기업의 전기요금 보조금 지원 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 상향으로 산업계 원가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보고서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완화·면제하거나, 기후대응기금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배출권거래제는 일정 수준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EU와 달리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간접배출을 규제하고 있다. 발전부문 유상할당 비율이 상향될 경우, 기업들은 간접배출 감축과 더불어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이중으로 져야한다.
보고서는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인센티브를 기반으로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경우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 및 탈퇴가 가능하며,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해 매년 성과를 보고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등 제도 참여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들의 감축 이행을 유인하고 있다. 기후대응을 선도하는 EU는 최근 기업들의 환경 규제로 인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한 바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미국은 관세조치를 통해 주요국의 제조업 공급망을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며,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탄력적인 기후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