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12일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4조에 따른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을 일부 개정·발령했다. 이번 개정으로 산소와 아산화질소가 약제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상한금액 조정 제외 대상으로 새롭게 포함됐으며, 고시는 8월 15일부터 시행됐다.
이번 조치(보건복지부 고시 제2025-137호)는 약제 실거래가 상한금액 조정 제도를 의약품 공급 내역 보고, 저가구매 장려금 지급 등 유사 사후관리 제도와 정합성을 높이고, 현행 제도 운영에서 나타난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의료용 고압가스가 지닌 공공성과 특수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산소(O₂)와 아산화질소(N₂O)는 의료 현장에서 생명을 지키는 핵심 자원이다. 산소는 응급·중환자 치료, 수술, 호흡기 질환 관리 등 생명 유지와 직결되며, 아산화질소는 마취와 진통 보조제로 널리 활용된다. 하지만 이들 의료용 가스는 일반 의약품처럼 제약회사가 생산·유통하는 구조가 아니라, 고압가스 충전소에서 제조되어 특수 용기를 통해 운송된다. 안전 설비와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어서, 공급 구조가 다른 의약품과 크게 다르다.
그동안 업계는 이러한 특수성이 제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공급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2017년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적용 이후 제조·검사·인력 관리 비용이 크게 증가했지만, 약가 체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실제로 GMP 적합 의료용 산소 제조업체는 2015년 144곳에서 2021년 95곳으로 감소했으며, 일부 농어촌·도서지역에서는 공급 거점이 멀리 떨어져 공급 공백이 발생했고, 일부 병원은 먼 충전소에서 가스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의료용 산소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수요가 폭증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공급 부족이 현실화되었다. 이런 경험은 의료용 가스를 일반 의약품과 동일한 가격 조정 체계로 관리하는 것이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국의료용고압가스협회(회장 장세훈)는 이번 개정을 환영하며, 산소와 아산화질소는 가격 경쟁보다 안정적 공급과 품질 관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이번 조치는 GMP 기준을 충족한 고품질 의료용 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해 환자 안전을 확보하고, 국가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의료용 가스 업계는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전문의약품으로서, 의료용 가스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고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급등한 제조원가를 반영한 합리적인 가격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며, 업계는 전기요금 연동형 가격제, 운송비·용기 임대료 별도 청구, 협회 주관 원가 평가제 도입, 나아가 OECD 수준의 의료용가스 보험수가 책정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러한 과제는 단순한 업계 이익이 아니라, 합리적 가격 형성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과제다. 일본, 유럽, 미국 등 주요 국가는 이미 의료용 가스 가격을 공급단가, 운송비, 용기 임대료, 전기·유류비 변동분까지 세분화해 반영하며, 낙도·산간지역에는 별도 차등 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방식은 품질 관리와 공급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가격 압박으로 제조업체가 설비 투자나 인력을 축소하면, 용기 안전 점검이 미흡하거나 응급 납품이 지연되는 등 환자 치료에 직접적인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의료용 산소 단가는 일본의 최소 10분의 1, 많게는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가격 구조는 제조업체의 설비 투자와 인력 확보를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의료 현장의 공급 공백을 확대할 위험이 크다. 특히 의료용 가스는 고압 장비와 안전 규제가 필수적인 자원이므로, 적정 가격 보장은 단순한 원가 보전을 넘어 환자 생명권과 직결된 안전망을 유지하는 최소 조건이다.
결국 의료용 가스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 자원이다. 가격을 제대로 책정해야 품질 관리가 가능하고, 품질이 확보돼야 재난·감염병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공급망이 흔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보험 수가 마련은 업계 생존을 넘어 국민 안전을 지키는 사회적 책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