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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1-05 09:13:56
  • 수정 2026-01-07 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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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핀 상용화, 이제는 구조의 문제다”



표준 정립·수요 발굴·실증 등 전략 마련, 경쟁력 강화 및 시장 진입

KERI, 실혐실 연구개발부터 산업 적용까지 현장 검증 소재 안착 주도




신소재의 가치는 실험실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증명된다. 기술적 완성도만으로는 산업이 움직이지 않고 뛰어난 물성만으로는 시장이 열리지 않는다.

오늘날 첨단산업이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기존 산업이 마주한 성능·신뢰성·효율성의 한계를 실질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검증된 대안이다. 소재 기술이 산업 경쟁력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정 적합성, 재현성, 장기 신뢰성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검증이 전제돼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5년 8월 정부가 발표한 ‘초혁신경제 15대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한 신호를 던졌다. 국가전략첨단소재 5개 분야 가운데 하나로 그래핀이 포함된 것은, 이 소재를 더 이상 연구실의 가능성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 검증·적용해야 할 전략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정책적 선언에 가깝다.


그래핀은 오랫동안 ‘기대가 앞선 소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2004년 단층 분리 연구 이후, 2010년 노벨 물리학상 수여를 계기로 그래핀은 뛰어난 전기·열·기계적 특성을 앞세워 ‘꿈의 신소재’로 주목받았다. 당시에는 기존 산업의 판도를 단기간에 바꿀 것이란 기대도 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고품질 그래핀의 대량 제조 기술과 응용 기술의 성숙도는 제한적으로만 향상됐고,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신뢰성과 재현성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 결과, 그래핀은 점차 ‘상용화에 실패한 소재’라는 회의적인 평가를 받게 됐다. 이후에도 일부 기업과 연구자를 중심으로 양산 가능한 생산 기술과 응용 제품이 개발돼 왔지만, 첨단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핀이 다시 논의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배터리, 전력반도체, 차세대 전자소자 등 기존 주력 산업 전반에서 성능 한계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그래핀은 기존 소재 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신뢰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구조를 고려하면, 그래핀을 새로운 산업이 아닌 기존 산업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활용할 전략적 여지는 크다.


이제 그래핀을 둘러싼 논의는 가능성의 유무를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이를 어떻게 검증·적용할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그래핀 산업화의 성패는 개별 소재 기술의 우수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를 수용할 산업 구조와 제도, 그리고 적용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검증 인프라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산업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래핀 산업화 가로막은 구조적 병목 해결 必

그래핀 산업화가 더디게 진행돼 온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소재 분류와 분석에 대한 표준화 부족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그래핀을 10층 이내의 2차원 탄소 소재로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이 기준을 벗어난 소재들까지도 ‘그래핀’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성격과 용도가 전혀 다른 소재를 동일한 이름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마치 골판지를 화장지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혼선은 그래핀 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명확한 소재 정의와 분석 기준, 이에 기반한 인증 체계 구축은 그래핀 산업화의 출발점이다.


둘째는 그래핀 특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산업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그래핀의 뛰어난 물성은 대부분 이상적인 단층 상태에서 측정된 결과다. 그러나 실제 산업 환경에서는 층수, 결함, 표면 흡착물, 분산 상태, 적용 매질 등에 따라 성능이 크게 달라진다.

복합소재나 잉크, 전극 형태로 적용될 경우 단층 그래핀의 물성이 그대로 구현되기는 어렵다. 초기 산업계의 회의적 반응 역시 이러한 기대와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제 그래핀은 ‘만능 소재’가 아니라, 기존 소재로 해결하기 어려운 특정 문제를 보완하는 기능적 소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래핀의 특성을 과장 없이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 가능한 영역에서 수요를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는 제품 개발과 검증을 가속화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인프라의 부족이다. 그래핀의 적용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제품 특성에 맞춘 소재 개질과 공정 설계, 그리고 반복적인 성능·신뢰성 검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대규모 설비 투자와 장기간의 검증을 전제로 하며, 특히 장기 신뢰성과 재현성이 요구되는 산업 분야에서는 개발 기간과 비용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이로 인해 그래핀 소재 기업과 수요 기업 모두가 적용 단계에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산업 확산의 속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반도체 산업에서 파운드리가 공정 검증과 양산 리스크를 분담하듯, 그래핀 산업에서도 공공이 주도하는 테스트베드 구축이 요구된다. 실제로 중국은 샤먼 첨단지구에 그래핀 특화 인큐베이터를 조성해 초기 공정 검증과 시제품 제작을 지원하고 있으며, 유럽은 그래핀 플래그십을 통해 2D 파일럿 라인을 구축해 대면적 제조와 산업 실증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중립적 실증 인프라는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적용 리스크를 낮추고 신소재 도입에 대한 산업계의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역할을 한다.


▲ 그래핀 소재의 분류



■그래핀 연구와 산업 현장 연결자, KERI

그래핀 산업화의 병목은 기술의 가능성 부족이 아니라 이를 산업 현장에서 검증하고 안착시킬 수 있는 연결 장치의 부재에 가깝다. 그래핀의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소재 개발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적용 경험과 검증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즉, 연구 성과와 산업 적용 사이를 잇는 실증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전기연구원(KERI)의 역할은 단순한 연구 수행 기관을 넘어, 그래핀 산업화를 현실로 끌어오는 촉매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KERI는 전기·전력·에너지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그래핀과 탄소계 나노소재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으며, 소재 특성 평가에서 부품 단위 성능 검증, 실제 운용 환경을 고려한 신뢰성 분석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검증 역량을 축적해 왔다. ‘만들어 보는 연구’를 넘어 ‘써보는 연구’까지 연결해 온 셈이다.

특히 KERI는 그래핀 관련 연구 성과를 기업으로 이전한 뒤, 제품 설계와 양산 단계까지 연계해 온 사례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그래핀 소재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를 산업 현장의 관점에서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요 기업이 신소재 도입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술 적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해 왔다.


나아가 전기적 특성 평가, 내환경 신뢰성 분석, 응용 부품 단위 성능 검증은 KERI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핵심 역량이다. 이러한 실증 중심의 연구 방식은 그래핀 적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사전에 걸러내고, 산업 적용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역할을 한다. 향후 그래핀 산업화를 위한 제도 설계와 연구 방향 설정에서도 이러한 실증 경험은 의미 있는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혹자는 그래핀을 ‘상용화에 실패한 소재’로 언급하지만, 산업사의 흐름에서 보면 이는 지나치게 단편적인 평가에 가깝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실리콘 역시 기초 연구 단계에서 본격적인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에 걸친 기술 축적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래핀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탁월한 물성과 잠재력이 너무 이른 시점에 주목받으면서, 산업과 시장이 이를 수용할 준비를 갖추기 전에 기대가 앞서 나간 측면이 크다.


이제 그래핀은 ‘가능성의 소재’를 넘어, 산업 수요와 실제 공정 환경에 맞춰 최적화되고 기능적으로 특화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배터리, 전력반도체, 전기·전자 부품 등 국내 주력 산업이 요구하는 성능 수준과 신뢰성 조건을 정확히 충족하도록 소재를 설계하고 적용하는 것, 이것이 그래핀 산업화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물성의 우수성만으로는 부족하며, 공정 적합성·재현성·내구성을 함께 검증해야 비로소 산업 소재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에 기반한 소재 특성 정의, 수요 중심의 적용 전략, 그리고 공정과 성능을 반복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와 실증 체계가 유기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제도적 지원과 산업 생태계가 이러한 방향을 뒷받침할 때, 그래핀은 기대와 논쟁의 단계를 넘어 정상적인 산업화 궤도에 진입하며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전략 소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핀 산업화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기술과 산업이 보폭을 맞춰 나아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정이다. 한국전기연구원은 그 여정에서 연구와 산업을 잇는 연결자로서, 그래핀이 ‘가능성의 소재’를 넘어 ‘현장에서 검증된 산업의 소재’로 안착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이다.


▲ 한국전기연구원의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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