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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8-24 11: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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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제처리한 후 국회는 야당의 장외투쟁과 미디어법 통과에 대한 헌법재판 제소 등으로 파행상태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 국회에서는 난장판이었다. 다수의 언론매체는 이를 두고 ‘입법전쟁’이니, ‘싸움은 힘 있는 자의 전유물이고, 싸워도 잃을게 없는 몸들이니 화끈하게 붙는다’느니 하며 국회의원의 행태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미국의 어느 주의 판사라는 한국계 인사는 “미디어법을 놓고 벌어진 국회 난투극은 나라망신”이라며 “한국을 모르는 외국 사람은 ‘후진국’ ‘미개한 나라’라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우려하는 등 한 결같이 냉소적으로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물론 싸움은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아 합리화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관에서 폭력은 원시적 행동양태로서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하여 싸움의 나쁜 의미에 모든 가치를 함몰시키고 싸움의 당사자들 모두를 싸잡아 양비론으로 접근하면 문제의 본질과 진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접근은 사실의 접근을 포기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에 대한 교훈도 얻지 못하게 된다. 결국 가치도 의미도 없는 비생산적인 비판에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싸움의 부작용에 못지않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싸움을 비판하기 전에 싸움에 대한 선과 악의 구분과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즉 법안내용이 무엇인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법안을 상정하려는지, 사전 공청회와 여론 수렴의 과정을 밟았는지, 이에 대한 국민 여론은 어떠했는지, 직권 상정은 정당한 것인지, 의안의 수정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의안 상정과정은 바르게 됐는지, 표결의 정당성은 있는지 등 이번 건에 있어 상당한 이질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저간의 본질을 살펴보는 노력을 기울인 후에 심판하여야 함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본 칼럼은 싸움의 부정적 관점에 머무르는 것이 본질에 대한 접근이 아닌 것으로 보아 싸움에 이르게 되는 우리 국회의 구조적인 문화를 살펴보고 대승적 견지에서 이를 개선할 방안을 생각해야 함을 강조하려고 한다.

국회의원은 헌법적으로 그 독립성을 보장 받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치구조는 전혀 주어진 독립성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입법의 주체로서 누구보다도 헌법을 지키고 법정신에 투철해야 할 국회의원이 헌법정신과 상관없는 역할과 임무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헌정역사가 짧아 충분한 시행착오를 겪어보지 못한 원인도 있으나 무엇보다 우리의 사회 문화와 교육에 있어 민주 국민으로서 주체적 개인의 자질 향상과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기회와 경험이 충분하지 못한 것에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민주시민의 자질은 서구유럽에서 아테네와 로마의 문화로부터 발아해서 유구한 역사 속에서 발전, 축적해온 산물이다. 시민사회 구성원의 참여단위로서 주체적이고 개체적인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적 배경은 집단 배경적 의식을 기초로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 명예와 명분을 중히 여기고 가족과 혈연, 지연, 학연 등 각종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스스로의 독자성과 주체성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적 배경 하에서의 독자와 주체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정치에 있어 전제 조건인 개체적 의사결정 단위로서의 역할 수행에 상당히 서툴 수밖에 없는 문화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당과 국회에서 독립적인 의사 결정자로서 독립적이고 평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정당 내에서도 당의 수장이 있어야 하고 시하층층 계급구조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당연한, 풀뿌리로부터 대표자를 선택하는 상향식 공천은 무시되고 대다수 하향식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통칭 ‘중앙당 공천 위원회’에서 중앙당의 전략 하에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 시민의 대리인으로서 시민의 뜻에 충실하기 보다는 그들 당의 전략이 우선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본 체계에서부터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정당은 정파로 나누어지고 이들의 보스의 영향 하에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결국 집단적 행태와 패거리 정치문화가 강하게 발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국회의원 다수는 그들의 주체적 의사의 표시와 행동보다는 당론과 보스의 뜻에 충실히 따라야 하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지도부가 정한 방향대로 거수기 노릇을 하게 된다. 만일 당론 또는 보스의 뜻을 거스르면 당내에서의 여러 가지 불이익은 물론 다음 공천에서 심각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감히 당론과 그들 보스의 뜻을 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러고서야 민주적이고 정당한 의사결정을 기대하기가 참으로 난망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정치 문화로는 타협과 협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는 토론 문화를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견이 있으면 양극단의 평행선을 달리는 구조이다. 흑과 백의 논리와 타협 없는 대치만 있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공정하게 승복하는 문화가 약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배양된 정치가들이기에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국회의원도 수입해야겠다고 자조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는 정의와 상관없이 보스와 당론에 의하여 좌지우지되기 쉽고 목소리 크고 극단적인 쪽이 지배하기 쉽다. 그러니 민주의 표본이어야 할 정당의 보스가 민주 정당원으로서의 자질은 낙제점이고 오히려 전제 군주 같은 힘을 과시하려는 속성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들 집단의 정책과 의사는 그만큼 유연성이 부족하고 타협의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극단적인 대치와 폭력의 난장판이 다반사로 연출되는 것이다. 이 결과는 국민의 냉소와 정치적 무관심을 낳게 되는 것이고 정치는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그들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정치판의 싸움을 단지 보기 싫다고 정치까지 외면한다면, 그리고 무관심으로 이를 방관한다면 민주 정치는 없어지고 민주 사회정의는 사라지게 된다. 강자의 논리만 지배하게 되고 국민의 이익과 관련 없이 특정집단의 이익이 지배하는 정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는 엄청난 모순을 낳게 되고 이는 국민의 저항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며 결국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 문화에 있어 정치판의 싸움은 그 본질이 싸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은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문화상으로 필연성이 있다 하여야 할 것이다. 정치판의 싸움을 나쁘게 만 볼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성실한 역할 수행의 측면도 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싸움의 이면에 있는 본질을 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 시민으로서 정치판이 싸운다고, 또한 난장판이라고 정치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럴수록 민주시민으로서 관심과 감시자의 역할을 소홀이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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