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센서 등 첨단산업 내실 성장,
나노 단위 초정밀 장비 국산화 필수

웨이퍼 위에 미세 회로를 그리는 반도체 노광 장비의 정밀도가 피코미터(pm) 단위로 가고 있고, 첨단 패키징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장비도 25나노미터(nm) 정밀도로 가고 있다. 기존의 마이크로미터(um) 단위의 정밀도로는 생존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은 이미 노광 장비 개발로 nm를 지나 pm로 가고 있다.
과거 D램 메모리 반도체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술은 미국 인텔에서 처음으로 상용화 됐지만 1970~80년대에 글로벌 주도권은 일본으로 넘어왔다. 영원할 줄 알았던 일본의 기술력도 오래가지 못하고 1990년대부터 한국에 주도권이 넘어왔고, 이제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로 성장한 CXMT, YMTC 등이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D램의 경우, 중국의 HBM 기술력은 한국과 몇 년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특히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부족 현상이 지속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식의 가치가 급등하게 됐으나 반대로 중국 업체의 D램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위기로 돌아올 것으로 예측된다.
기존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메이저 업체나 서버 업체에게 반도체를 팔지 못하고 내수 시장에 한정돼 판매했다. 한국 반도체가 공급이 원활해 중국 반도체에 커스터마이징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업체와 테스트를 시작하고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기술력은 둘째치고 시장에서 중국이나 한국이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게 됐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은 규모가 작은 수요기업을 시작으로 서서히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이것은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과정과 별 차이가 없다. 과거 일본 반도체 기업은 대형 컴퓨터(메인 프레임)에 들어가는 10~20년이나 사용이 가능하고 비싼 고성능 반도체 생산에 집중했으나 한국은 2~3년만 사용해도 되는 PC용 반도체 시장에 맞춰 생산을 확대했다. PC의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2~3년 후에는 새로 나온 고성능 PC를 사면 그만이니, 비싸고 성능이 높은 일본 반도체가 필요 없었다. 이렇게 한국의 반도체 시장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게 됐다.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주도권을 넘겼지만 소재와 장비 주도권은 여전히 쥐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시장 성장과 함께 장비 산업과 소재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으로 호황일 때, 일본 통산성(MITI)에서 국가 프로젝트로 ‘VLSI(Very Scale Integration, 초고도집적회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압도하던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단숨에 따라잡기 위해 추진 됐으며 이를 위해 당시 일본 대표 반도체 기업인 후지쯔, 히타치, 미쓰비시 전기, NEC, 도시바 등 5개 기업이 연합을 맺었다. 4년간 약 740억엔(정부 지원금 300억엔 포함)이 투입된 초대형 민관 공동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당시로는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256K D램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일본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원천 기술도 함께 개발됐다. 이로 인해 일본 기계 산업은 정밀도가 크게 향상 되었고,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세계적인 니콘, 캐논, TEL, NuFlare 등 많은 기업들이 육성됐다. 일본 반도체 생산 기업은 미국에서 비싼 노광기를 사는 대신에 니콘과 캐논이 만든 가격이 저렴하고 사용이 편한 장비를 가지고 반도체를 만들고,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반도체 장비 가격은 더 떨어져 일본 장비 기업은 판매가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
▲ Besi社의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로드맵. 2030년 25nm 정밀도 장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출처:BESI社 invester presentation)日 ‘VLSI 프로젝트’ 추진 반도체 시장 석권, 선진기술 확보 장비社 지속 성장
국산 장비 레퍼런스 확보 위한 정부 프로젝트 지원 및 산학연 협의체 조성 必
▲ ASML의 EUV 장비는 초정밀 장비를 대표한다.(출처:ASML 홈페이지)이에 한국 반도체 생산 기업들은 ASML이 나타나기 전까지 수익의 상당한 부분을 일본 장비회사에 지불하는 구조가 지속됐다. 노광 장비 뿐만 아니라 트랙 장비의 경우 일본의 TEL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면서 수십 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업체가 되었고, 이 장비가 없으면 한국이 반도체를 못 만들 정도가 됐다.
당시 일본 정부는 VLSI 프로젝트를 통해, 100um대에서 정체된 일본 정밀기계 수준을 끌어롤리고자 1um 대의 정밀도를 가지는 장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모든 기업이 기술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노광 장비는 물론이고, 트랙 장비도 소재 산업과 연관해, 초정밀 장비를 만들게 함으로써 글로벌 어느 기업도 따라오지 못하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게 됐다.
이처럼 일본은 반도체 주도권을 한국으로 넘겼음에도, 장비와 소재 산업을 통해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많은 부분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역사의 교훈을 통해 이제 우리는 반도체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더라도 내실 있게 수익을 챙길 수 있도록 일본과 같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선 우리는 1um(일본 VLSI 프로젝트의 니콘, 캐논) 수준의 정밀도에서 nm/pm 단위(예: 하이브리드 본딩 25nm) 수준 정밀도를 가진 장비를 개발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국산화한 장비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산 장비가 생산 현장에서 레퍼런스(reference)를 확보하게 되면 일본이 과거에 구축했던 것처럼 중국, 인도, 베트남 등 후발 주자들이 국산 장비를 사야하는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 반도체 TCB 본더 장비 회사인 H社도 시가 총액은 높지만 실제 매출은 2025년 기준 5000억원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규모로는 일본의 니콘, 캐논, TEL과 같이 수십조원의 매출을 가진 기업과 경쟁하기 힘들다. 그러나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국산 장비 기업의 기술력을 업그레이드 시킨다면 반도체 주도권이 설사 중국으로 넘어가도 우리는 살 길이 있다.
특히 25nm 정밀도의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육성해야 한다. 중국은 반도체 노광 공정 핵심 장비인 EUV(극자외선) 장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DUV(심자외선) 장비를 이미 만들어서 사용 중이고, 이 장비는 이미 25nm 이상의 정밀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서 국산 장비를 사용한다고 하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구매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 TEL, 캐논, 니콘 같은 업체를 국내에 만들어 향후 메모리 반도체가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더라도 수십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패키징 분야에서 25nm 수준의 정밀 장비는 대표적으로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가 있다. 이 장비는 메모리에서부터 로직, 통신, 센서 등 모든 분야에 사용이 되는 장비다. 이런 장비에 들어갈 nm급 초정밀 기술을 개발해 국내 기업들이 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전자빔, DUV, EUV, 트랙장비 등 다른 반도체 장비도 정밀도를 높여야 글로벌 경쟁력이 생긴다.
nm 단위의 EUV ASML 장비는 빛을 웨이퍼에 정확히 투사하기 위해 자기 부상(마그레브) 마스크와 웨이퍼 스테이지가 전투기 급가속 수준인 중력 가속도의 10~20배(10G~20G)로 움직이며, 이 가운데 정밀도는 nm 단위로 맞추는 마그레브 스테이지는 기계 기술의 극한을 보여준다. ASML 장비 가격이 5천억원 이상이어도 초정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사야하는 것이다.
인하대도 이미 25nm 정밀도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개발을 추진 중으로 현재 설계, 제작 중이다. 마그레브 스테이지 개발 설계 시뮬레이션 후 확정하고, 국내에선 가공 기술이 부족해 네덜란드에서 제작하고, 테스트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전자 산업 초기에 전자식 교환기를 만들 때, 삼성·LG 등 모든 대기업과 산·학·연이 연합한 것처럼 nm 초정밀 장비 국산화를 위해 다시 한 번 도전해야한다. 정부가 반도체 수요 대기업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및 학계와 연구계로 구성된 연합체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국산 정밀 장비를 지속 테스트하고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반도체는 물론 첨단산업의 내실 있는 성장과 초격차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 인하대가 개발 중인 4nm급 마그레브 스테이지(출처:인하대 주승환 교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