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초격차 확보,
수요산업 맞춤 소부장 연계 국산화에 달렸다

최근 글로벌 산업 생태계는 기술이 곧 안보이자 국가의 생존을 결정짓는 ‘기술 패권 시대’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반도체, 방위산업, 우주항공 등 국가 첨단 전략 산업에서 초격자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제품을 만드는 ‘핵심 제조 장비’의 자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2010년대 이후 국내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국산화 기조에 맞춰 비약적인 기술 진보를 이루었다. 정부 주도 과제와 민간 기업의 투자로 의미 있는 성과를 냈으나, 여전히 양산 적용 단계에서는 뚜렷한 한계점을 마주하고 있다.
첨단 산업의 대표주자로 대표되는 아토마이징 시스템, 금속분말 적층제조, 와이어 제조 및 적층제조, 열간등방압성형기(Hot Isostatic Press:HIP) 등의 장비는 2010년대 초반까지는 연구실 규모의 소형 장비나 외산 장비 운영에 의존하였으나, 최근 10여 년간 실증 및 대형화 단계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산학연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반도체, 방산, 우주항공, 원자력 산업 현장에 국산 장비를 도입하는데에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국내 장비사가 기술적으로 우수한 아토마이저나 HIP을 개발해도, 현장 수요 기업들은 이미 수십 년간 신뢰성이 검증된 글로벌 선도 기업(미국, 유럽, 일본 등)의 장비를 선호하며, 국내 장비가 시장에 진입해 실적(Track Record)을 쌓을 수 있는 실증 기회 자체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외형적인 시스템과 프레임은 국산화에 성공했으나, 시스템 내부를 들여다보면 핵심 부품의 외산 의존도가 여전히 높으며, 독일, 미국, 일본산 제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경우가 많아 진정한 의미의 자립화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현재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이 하나의 공급망(Value Chain)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각각 독립적으로 추진되면서 마치 서로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기술이 단절된 ‘단절형·선형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으며, 이는 기술사업화와 제조 혁신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된다.
▲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 생산 공정 등에 적용되는 고정 숄더 마찰교반용접(Stationary Shoulder Friction Stir Welding) 장비. 열 입력을 정밀하게 제어해 고품질 접합이 가능해 스마트 제조 공정과 연계가 가능하나 기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실제로 국내 소재 기업이 우수한 특수합금분말 소재를 개발해도, 이를 테스트하고 최적화할 국산 장비가 없어 외산 장비를 활용하여 검증을 해야 하며, 역으로 국내 장비사가 고성능 아토마이저나 HIP을 만들어도, 정작 여기에 최적화된 국산 원소재나 와이어가 없어 외산 소재를 활용하여 테스트하는 모순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또한 소재가 개발된 후 장비 개발이 뒤따르거나 그 반대로 진행되면서, 전체 공급망이 완성되기까지 과도한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급변하는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속도 지연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해 지속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국내 첨단산업의 핵심 장비 및 소재의 자립화를 가로막는 가장 고질적인 원인중 하나는 연구소나 대학 등 연구거점과 실제 제품을 양산하는 기업체 간의 장비 선호도 격차에 있다. 대학이나 연구소는 글로벌 탑티어 저널(SCI급 논문) 게재와 선행 연구의 학술적 공신력을 최우선으로 하여 수십 년간 전세계 학계에서 데이터가 검증된 고가의 해외 장비를 수입하여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단가 경쟁을 벌여야 하는 민간 기업체는 해외 장비의 높은 제조 가격, 소모품 수입 비용, A/S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장비 및 소재의 국산화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해외 장비를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게 되면 해외 장비사들에게 좋은 필드 테스트 데이터(Data)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기술을 개발하려다가 선행 연구 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돼 해외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모순도 발생하게 된다.
대형·양산화 대응 국산화 요구↑, 따로 노는 소부장 국산화 실증 어려워 외산 의존 반복
HIP 국산화 성공 제조비용 절감·신사업 확대 기여, 수요 맞춤형 R&D·인프라 지원 必
필자는 HIP을 활용한 장비 개발 및 소재 개발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금속 및 세라믹 소재 내부의 미세 기공을 완벽히 제거해 상대 밀도 100%의 극한 성능을 부여하는 HIP은 2020년 이전까지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소수 해외 기업이 사실상 독점해 왔다. 수입 장비 도입에 따른 외화 유출은 물론, 유지보수 시 해외 기술진의 일정에 맞춰야하는 폐쇄적 시장 구조는 우리 제조업의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였다.
기존 국내 공공기관 및 연구소 등에 공급된 HIP은 전량 해외에서 수입을 하였으며 국내 장비 제작 회사들의 점유율은 전무하였다. HIP은 연구수행을 위한 장비가 5억원 이상으로 책정될 정도로 고가의 장비이며, 대형화 장비는 100억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시장 진출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POMIA는 국내에서 소형 HIP 제작 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6,000bar이상의 고압 용기를 직접 제작 및 ASME 인증 확보가 가능한 일신오토클레이브와 대형 HIP 국산화 장비 제작을 진행하였다.
▲ 일신오토클레이브가 국산화한 대형 열간등방압성형기가 설치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국내 기업 지원 및 서비스가 가능해졌다.직경 Φ650, 길이 2,000mm를 성형할 수 있는 HIP 제작까지 단 18개월이 걸렸는데, 대형 HIP의 경우 기존에 해외 장비 수입시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것을 고려하면 그만큼 제조기업의 기술 사업화와 제조 혁신을 위한 시간을 단축시킨 것과 같다.
또한 운임비 및 환율 등으로 인하여 높은 제작비용이 들어갔던 수입산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부품 교체, A/S 등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제조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투자대비수익률(ROI)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일신오토클레이브는 본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다수의 연구기관 및 업체들에게 HIP을 응용한 신사업 모델을 제시했는데, 이는 기존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술력을 확보한 모델이다.
소·부·장 기술개발 패러다임은 범용 장비의 시대에서 시장 최적화·인증 동시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능이 좋고 다양한 스펙을 소화할 수 있는 범용 장비를 만들면, 시장이 따라오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었다면, 향후에는 철저하게 수요 시장이 먼저 결정되고 그 타깃 부품의 단가와 스펙에 맞는 맞춤형 장비와 공정을 설계하는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 재편이 될 것이다.
현재 글로벌 소·부·장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는 반도체, AI, 우주항공, 방산 등의 첨단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첨단소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동시공학형 국산화 모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수요·공급의 동시 맞춤 전략을 수립하고, 소·부·장의 삼위일체형 동시 R&D의 활성화, 공공 인프라를 통한 실증 기회 확대, 민관 협력 등을 통해 글로벌 선도 기업을 능가하는 초격자 기술 안보를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국내 기술로 제작된 레이저-DED-Wire 적층성형 장치이며, 3개의 와이어 장입이 가능하며 스타트업이 기술 개발에 성공한 장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