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의 이른바 ‘서민업종’ 포기 결정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움직임이 오히려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외신에서 나왔다.
호텔신라는 지난달 26일 전국 27곳에서 운영중인 고급카페형 베이커리 ‘아티제’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으며, 범 LG그룹계인 급식업체 아워홈, 신세계그룹의 조선호텔 베이커리 등 대기업의 ‘골목상권 철수’ 움직임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보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난 27일 인터넷판을 통해 한국 정치권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한국 정치가들은 재벌이 국가경제 발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이상하게 파악하는 버릇이 있다”고 비꼬며 “대기업의 식품소매시장 철수 요구는 ‘화장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자영업 구조조정과 실질적인 사회안전망 제공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소상공인 생존권의 인위적인 보장이라는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문제는 재벌들이 일본이나 독일 같은 소규모 전문기술기업의 성장을 막는 것”이라며 “한국의 한 사업가가 혁신역량을 키우기 시작하면 재벌이 주요인재와 자산을 사버린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재벌의 행태와 이를 묵인하고 있는 정치권 때문에 한국 산업이 다수의 강소기업에 의한 튼튼한 기술적 기반을 갖추는 기업 생태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 경제구조의 취약점이자 위기의 시작라는 진단이다.
신문은 “한국은 아직도 일본산 기술제품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데다 전통적 수출시장을 중국에 빼앗기면서 강소기업(boutique engineers) 육성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정치가들은 이 같은 숙제를 해결할 노력조차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출범 이래 ‘동반성장’과 ‘상생’이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고 지난해 금형, 산업가스, 충전업, 변압기 등 총 79개 품목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서 3년간 이들 품목에에서 대기업의 사업이 제한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아직까지는 ‘선언적 권고’ 성격에 불과하고, 실제로 해당 업종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모 중소기업 대표는 “지금으로서는 대기업과 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적합업종 권고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위반 시 3년 이사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특별조치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전경련을 위시한 대기업은 물론 중견 규모 기업들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총선과 대선을 앞둔 기성 정치인들이 재벌의 제과·제빵 사업 철수를 진척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를 납득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신문은 “재벌이 신생기업의 우수한 인력을 동물원에 넣어 재능을 파괴한다”는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발언을 소개하고 “안 원장 같은 (정치권의)완벽한 아웃사이더가 아시아 4위의 경제대국을 경영한다고 상상하기 힘들지만 주류 정치인들이 빵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